로사리오 순례단 - 명동성당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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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 순례단 - 명동성당 (20.1/11)

김봉섭다니엘 0 47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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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 성지순례단

명동성당, 서소문밖성지, 약현성당, 당고개성지, 새남터성지, 절두산성지

2020년 1월 11일 - 80여명

명동성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 지하 묘지에는 1900년 9월 5일에 성 다블뤼(Daveluy, 安) 주교 등 4명의 순교자 유해가 안치되었습니다. 이어 1901년 11월 2일에는 성 앵베르(Imbert, 范) 주교 등 3명의 유해가, 1909년 5월 28일에는 남종삼과 최형의 유해가 안치되었습니다. 이들 중 훗날 복자, 성인품에 오른 이들의 유해는 1967년에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그렇지만 대성당 지하 묘지는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되었던 성스러운 곳이며, 지금까지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는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자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신부의 유해가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서소문밖 성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에서 순교자가 처음 생긴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로, 한국 교회의 첫 세례자인 이승훈 베드로와 명도회 초대 회장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백서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 알렉시오 등이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정하상 바오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등이 이곳에서 순교하였고,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성 남종삼 요한 등이 순교하였습니다. 이처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는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하였으며, 그중 마흔 네 명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면서 한국 교회사상 가장 많은 성인이 탄생한 곳이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약현성당

중림동약현성당은 1892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서양식 교회 건축물입니다. 약현(藥峴)은 이 언덕에 약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명동대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1891년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하였습니다. 중림동약현성당 아래에는 서소문 밖 네거리로 사형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1801년 이후에 100명이 넘는 교우들이 순교하였습니다. 그분들 중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 남종삼 요한을 포함한 마흔 네 분이 한국 천주교 200주년이 되던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되었습니다.


당고개 성지

당고개 순교성지는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성지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41명의 순교자가 목숨을 잃은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이곳 저잣거리의 상인들은 음력설 대목장에는 처형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소문 밖 형장을 피해 조금 한강가로 나간 곳이 당고개입니다. 원효로 2가 만초천(蔓草川) 변에 위치한 이곳은 1840년 1월 31일과 2월 1일 양일에 걸쳐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함으로써 기해박해를 장엄하게 끝맺은 거룩한 곳입니다.


새남터 성지

기해·병오·병인박해 당시 성직자 11명과 교회지도자 3명이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한 장소

새남터는 원효로 남부와 한강로 서편 사이와, 남으로는 한강변까지의 황량한 모래터였습니다. 남대문 밖 저습지였던 모래벌 새남터는, 간혹 풀이 우거져 있기는 하나 사람이 거주하거나 농토를 일굴 수 없는 모래토 황무지였습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그 북부 일부를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해 왔으며, 때로는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은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새남터와 조선 천주교회와의 악연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성직자 없이 천주 신앙공동체 조직을 이루고 천주 신앙생활을 시작한 조선 천주교인들의 성직자영입운동에 따라 선교활동을 펴고 있던 조선 교회 최초의 신부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박해 당국에 의해 새남터에서 처형됨으로써 비롯되었습니다.

그 후 한강가, 쓸쓸하고 황막한 모래땅 새남터는 우리 교회에 큰 박해가 닥칠 때마다 외국인 주교나 신부 등 선교사와 우리 신자 다수가 참수 치명된 대표적 순교성지가 되었고 새남터에서 순교한 순교자들 가운데 11위가 1984년 5월에 시성되어 103위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절두산 성지


 1866년 프랑스 함대의 침입을 계기로 많은 신자들을 참수해 처형했던 장소

한강의 버들꽃나루라고 불렸던 양화진에 자리 잡은 절두산 순교성지는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된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순교 사적지로서, 가장 혹독한 박해로 일컬어지는 1866부터 1873까지인 병인박해 기간 동안 수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록으로 확인되는 순교자는 김한여 베드로, 최경원 야고보, 이의송 프란치스코, 김이쁜 마리아, 이붕익 베드로, 조 타대오 등 17명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 5명을 포함하여 22명뿐입니다.

현재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과 박물관이 서 있는 봉우리는 그 형상이 누에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이라 불렸으나, 수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된 후에 ‘천주교인들이 목 잘려 죽은 곳’이라는 의미의 절두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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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봉사 - 조 시몬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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