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동 사람들(1)

화정동 사람들(1)

곽준형니꼴라오 1 352 5

                                               화정동 사람들 (1)


초대: 양월용(바실리오),이정숙(세실리아) 부부
사회 : 곽준형 (니꼴라오)
기록/정리 : 박명예(로사)

<화정동성당 초대 사목회장을 지낸 양월용 바실리오 형제님은  천주교 신자들이 깊은 산골에 모여 살며 옹기를 굽던 충북 청원군 미원면 구방리에서 태어났다. 6살 때 어머님을 여의시고, 7살 때 옹기공장이 있던 경기 이천으로 이사를 왔다. 부인 이정숙 세실리아 자매님 역시 옹기장이 집안에서 태어나셨고 할아버지는 발안공소 회장을 지내셨다. 이모부가 이천공소 회장으로 계실 때, 이모부 중매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셨다고 한다. 화정동성당의 역사와 함께 살아오신 두 분을 화정도서관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나 소중한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화정동 성당이 출범한지도 올해로 24주년이 됩니다. 두분은 우리 화정동 성당의 출범과 함께 24년을 화정에서 미사를 드리셨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성당 출입도 못하셨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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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오 & 세실리아 : 80 평생 처음 있는 일이어서 당황스럽고 슬펐어요. 평화방송 매일 미사로 안정을 되찾게 되었지만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아쉬움은 너무 컸어요.


사회: 자매님은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지신 것 같아요.


세실리아 : 시국이 어려우니 활동을 줄이고 들어 앉아 기도에 힘쓴 덕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다행히 미사가 재개되어 첫 미사를 드리는데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어요. 7살 때 첫영성체 하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때는 미사포도 귀해서 어머니가 설탕포대 4개를 이어서 끈을 달아 머리에 쓰게 만들어 주셨죠.


사회 : 두 분은 모태신앙이신 거죠?


바실리오 : 우리 선조들은 김수환 추기경님 댁처럼 옹기장이셨어요. 작고하신 선친과 형님도 옹기장이로 사셨습니다. 형님은 일제 강점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순사가 되려고 시험을 치렀다가 아버지의 불호령으로 포기하고 옹기장이로 사셨어요. 그 시절엔 남자들은 옹기를 만들고 여자들은 옹기를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시면서 옹기를 팔고 천주교 신앙을 전교도 했죠. 


사회 : 박해시대와 비슷한 생활 모습이었네요.


세실리아 : 우리 어머니도 옹기장사를 하셨어요. 골롬바 할머님은 박해 때 치명당하셨는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집안 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할아버지도 발안 공소의 회장을 지내셨습니다. 나는 조상님들로부터 뿌리 내려온 구교 신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바실리오 : 나는 우리 조상으로부터 땅도 집도 받은 것은 없지만 뿌리 깊은 신앙을 물려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6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우리 누님(양 카타리나)이 옹기를 팔아 형제들을 뒷바라지 했고 나를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누님은 평생 미혼으로 사셨어요. 처녀의 몸으로 옹기를 팔면서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셨죠.

 

사회 :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셔서 결혼하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바실리오 : 이천 공소 회장이시던 세실리아 이모부의 중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제가 이천 공소의 모범 청년이었습니다. (일동웃음)  제가 살던 동네는 60세대 전체가 모두 천주교우의 가정으로 뿌리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어요.


세실리아 : 어릴 때 모랫말성당(도림동성당)에서 교리를 가르쳐 주시던 박재환(말구) 신부님이 우연히도 이천성당에 계서서 이천성당에서 혼인 성사를 해주셨어요.


사회 : 참 기막힌 인연이시네요. 젊은 시절 이야기 좀 더 들려주세요.


바실리오 : 앞서 말했듯이 저희 선조들은 옹기장으로 생업을 이어 가셨기 때문에 선조로부터 특별히 많은 것을 물려 받지는 못했습니다. 일찍 여읜 어머니 대신 누님이 처녀의 몸으로 옹기를 팔아 형제들을 뒷바라지 했고 그 덕택에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누님은 저희와 함께 생활하시다가 치매가 찾아와 제천에 있는 요양원에서 93세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본당 수녀님이 제천에 있는 요양원으로 부임하시게 되어 그곳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같은 누님으로 화정동 옛 성당에서 치러진 누님의 장례 미사 때 ‘누님 어머님’이라는 고별사를 해서 참석하신 많은 자매님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적성에 누님의 산소가 있습니다.


세실리아 : 누님께서 워낙 자애로우셔서 함께 살면서도 전혀 갈등이 없었어요.


바실리오 : 지금도 군입대하던 날 언덕에서 손을 흔들며 눈물 짓던 누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눈물) 나는 군에 입대해서도 성당부터 찾았어요. 그런 덕분인지 군대에서도 늘 하느님의 은총 속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어요.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자부합니다. 가진 게 없어도 내 곁에는 늘 든든한 하느님 빽(back)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 : 두 분이 이 지역으로 옮겨 오신 것은 몇 년도 인가요?


바실리오 : 1980년대 중반 즈음이죠. 고양시에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에는 북가좌동에 살았죠. 모래내, 수색동, 능곡 본당을 거쳐 화정동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다닌 신설 성당만도 네 군데나 됩니다. 건축 헌금도 적극적으로 했죠.


사회 : 가시는 곳마다 매번 성당을 신축하는 상황이 원망스럽지는 않으셨나요?


바실리오 : 전혀 원망하지 않았어요. 몇 년 후면 사제나 수도자는 떠나시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성당 건축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세실리아 : 저는 젊어서(북가좌동 살 때) 건축업을 했는데요, 건축 현장에서 남는 철근이나 벽돌 등을 성당 신축에 사용하기도 했어요. 건축업에 종사하다 보니 성당봉사활동에 소홀하던 시기도 있었죠. 그때는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은 잘 성장하여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열심히 활동하기도 하고 모두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했어요. 하지만 역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때는 그만큼 많은 은총을 받고 신앙생활에 소홀할 때는 삶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사회 : 두 분은 성당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바실리오 : 교회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능곡성당에서는 전례분과장을 맡기도 했고, 화정동성당에서는 첫 사목회장을 지냈습니다.


세실리아 : 저는 구역의 반장, 레지오 활동을 활발히 했습니다. 능곡 성당에서 반장으로 활동 할 때에는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전이여서 3개 리(里)를 관할했어요. 밤이 되면 전기도 없는 캄캄한 길을 플래시를 켜고 레지오 회합을 마친 단원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어요. 

 

사회 : 화정동 성당의 설립 초기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바실리오 : 교구에서 신부님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가 사제관을 얻었습니다. 자택을 담보로 교구에서 대출을 받아 전세를 얻었죠. 그리고 지금 고양우체국 건너편 건물 3층에 성당으로 사용할 장소가 매물로 나왔다고 해서 계약을 하고 성전 건축 전 3년 정도 성당으로 사용했어요. 주일학교도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우리 집 지하실에서 교리공부를 했죠. 사목회는 우리집 거실에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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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10월 성전건축 기공미사를 위해 방문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사회 : 자택이 거의 성당의 역할을 했네요. (웃음) 초대 사목회장으로 성당을 신축하면서 어려움도 크셨겠네요.

바실리오 : 일반 신자들은 성당 신축에 관여하지 않으니까 대부분 깊이 알 수가 없지만 나는 사목회장으로 성당 신축과 관련하여, 부지 매입, 건물 신축 등 많은 것을 알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부지를 매입하고 신축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건축업자가 자재를 부적절하게 사용하기도 하는 등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성당을 잘못 지으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하느님을 뵐까? 하는 마음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바실리오 : 어려움 속에서도 성당을 신축하고 봉헌 미사를 드리던 일, 모든 교우들이 한마음으로 체육대회를 한 일 등 즐거운 기억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회 : 형제님께서 언제나 쾌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셔서 그런 상처가 있으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봉사하면서 받는 상처를 이겨내면서 굳건한 신앙심을 유지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존경스럽습니다.


세실리아 : 신앙은 사람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교우들에게 때로는 사제나 수도자에게도 상처받을 수 있지만 신앙은 지켜야 합니다. 늘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내가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은 어디로 이사를 하던지 교적 옮겨놓고 교무금부터 납부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 바실리오 형제의 영명축일(1월2일)을 해마다 잊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실리오 : 나는 살아오면서 두 가지 부러운 것이 있었어요. 하나는 2층집에 사는 것, 또 하나는 부모님 산소를 잘 꾸며 놓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저에게 넘치는 은총을 부어 주셔서 3층집을 주시고 부모님 산소도 남부럽지 않게 꾸며 놓았어요. 지나온 삶이 하느님의 뜻이고 은총이었습니다. 늘 하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사회 : 가슴뭉클한 ‘누님 어머님’의 고별사와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오신 지난 이야기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화정동성당 교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귀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리 주변의  잔잔한면서도 아름다운 신앙이야기를 찾아 교우분들과 함께 공유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첫 번째 이야기, 양월용 바실리오·이정숙 세실리아 교우님께서 풀어주신 이야기 보따리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말끔히 정리해주신 박명예 로사 자매님(노인분과장)께 감사드립니다.

 2020년 5월 인터뷰함.>
 

1 Comments
토끼 06.28 21:49  
화정동 사람들(1)
양월용바실리오,이정숙세실리아 부부님 인터뷰내용.긴글 다 읽었습니다.두분의 모태신앙과 열심히 신앙생활 활동존경 스럽습니다.화정성당에 보배이십니다.
저는 아직은미흡한 신자로  매일미사 열심히 드리고 은총과은혜 받으면서 현직에서  환우를 잘 보살피는 밤번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박명예로사 노인 분과장님.화정성당24주년을 맞이하며 귀감이되는 인터뷰 내용 깔끔히 정리하여 주셔서 넘 고맙고,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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